2025. 3. 11. 15:12ㆍ의료윤리
1. 정의 원칙의 정의
정의의 문제는 의료정책이나 의료행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정의 원칙(principle of justice)은 정의에 관한 형식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에 따라 의료기금의 분배나 부족한 의료자 원의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한다.그렇다면 정의 원칙이 왜 의료에서 문제가 되는가? 다음의 사례를 통해 의료에서 정의원 적이 갖는 의미와 그 적용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보자.
[ 사례 ] 인공심장 개발을 둘러싼 논쟁 1972년 미국의 의학, 윤리학, 법 전문가들이 패널을 이루어 현대의 테크놀로지로 인공 심장을 만들 때의 장점과 결점을 생각해 보았다. 선택은 다음 세 가지로 좁혀졌다. ① 너무 비싸므로 심장을 만들지 않는다. ② 핵에너지로 움직이는 심장을 만든다. ③ 전기모터와 충전배터리를 가진 심장을 만든다. 패널은 배터리로 움직이는 심장이 원자력 심장보다 수혜자, 가족,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보다 적은 위험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각각의 선택을 평가하는 데 있어, 패널은 수혜자의 삶의 질, 사회에 끼치는 비용, 테크놀로지의 상대 비용이 갖는 가진 뜻을 고려했다. 이 상대 비용은 심장 대신에 충족될 수도 있었던 다른 의학적 요구와의 비교에 의한 것이다. 상당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인공심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재정을 할당하지 않는 것은(정의 분배가 그것을 요구하므로) 부당(injustice)하며,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심장은 정당화되기보다는 사회에 더 큰 위협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정부예산이나 의료보험금 등을 특정의 심장병 환자들만이 혜택을 보는 인공심장의 개발에 투자해야만 하는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된 인공심장을 각 개인에게 어떻게 나누어 주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문제이다. 전자가 거시적 차원에서의 의료자원의 할당문제라면, 후자는 미시적 차원에서의 의료 할당문제이다. 이는 결국 "의료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가"의 물음으로 요약되기에, 의료 역시 정의의 물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된다.
아마도 이상 사회에서는 이런 정의 물음은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재화가 풍부하여 누구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또 각 개인은 타인에 대해 우호적이어서 재화의 분배나 처벌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이 없는 곳에서는 용기라는 덕목이 필요 없고, 물자가 부족하지 않은 경우에는 절약이 미덕이 될 수 없듯이, 정의가 사회체제나 경제체제의 덕목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전제된다. 이를 정의의 여건(circumstances of justice)이라 한다. 우선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재화가 풍부한 세상이라면 정의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협동이 어려울 정도로 자원이 궁핍하다 해도 정의는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협동이 필요할 정도로 풍족하거나 궁핍하지도 않은, ' 자원이나 재화가 적절히 부족한 상태'가 바로 정의의 객관적 여건이다.
한편, 정의는 인간이 완전히 이타적인 존재도 아니고 순수히 이기적인 존재도 아닌 여건에서 문제가 된다. 인간이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영원히 홉스 적인 자연 상태에서 야수적인 존재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며, 반면에 인간이 철저히 이타적인 존재라면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몫을 엄밀히 가르고자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제한된 이기심 혹은 부족한 이타심이 바로 정의의 주관적 여건이 된다. 이 두 조건을 사회철학에서 흔히 흄적 조건(Humean condition)이라 하는데, 이는 인간사회의 일반적 여건이기 때문에 정의는 우리 사회의 1차적인 덕목이라 하겠다.
진료라는 의료자원의 경우에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원의 적절한 부족 상태가 성립되고, 의료인과 환자들은 적절한 이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료에 있어서 정의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2. 사회정의를 위한 의료자원의 분배 방식
가. 거시적 분배의 문제
거시적 분배란 주로 국가 차원에서의 의료예산 편성과 연관된다. 즉, 국가의 예산 가운데 보건의료 부분에 및 %의 예산을 할당할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국회에서 편성된 예산 가운데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어느 부분에 어떤 비율로 투자할 것인가의 물음도 여기서 논의된다. 즉, 국민의 건강을 위해 스포츠나 레저 부분에 집중투자할 것인가, 예방에 투자하는 비용과 치료에 투자하는 비용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치료 가운데서도 새로 온 의약품 개발에는 얼마의 자금을 투자할 것인가 등의 물음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대표적 예로 미국 오리건주의 의료예산 분배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 보건의료 기금 할당을 제도적으로 체계화한 주가 오리건이다. 오리건 주가 표본이 되어 미국의 다른 주에서도 보건의료 물음을 합리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의료비용의 상승과 주민들의 질 높은 의료 서비스의 요구에 직면하여, 오리건 주는 1989년 <보건의료 기본법>(A Basic Health Services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가족수입이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수준(federal poverty level) 이하의 모든 시민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리건주는 Medicaid(생활보호 대상자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기금을 제공하는 연방정부의 의료 프로그램)에 이용될 수 있는 수백 종에 달하는 의료 서비스에 대해? '우선순위 목록' (priority list)을 개발하였다. 오리건 주 정부의 이러한 발상에는 모든 주민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인간다운 의료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줄 사회적 의무가 존재한다는 원칙이 전제되어 있다.
처음에는 비용 - 효과 분석에 근거하여 우선순위가 매겨졌으나, 후에는 이 방법이 포기되었다. 오히려 치료를 통해 기대되는 이득의 정도에 의해 그 순위가 매겨졌다. 치료가 삶의 질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평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는 '삶의 질을 참작한 수명' (QALYs, quality - adjusted life years )접근법으로 볼 수 있다. 이 접근법은 평균환자에게 특정치료가 제공하는 건강상태의 변화와 이와 연관된 삶의 질에 미친 영향의 두 요소를 고려하여 치료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이런 접근법에 따르면 중환자도 차별받지 않으며, 건강한 사람과 동등한 출발점에 서 있게 된다. 그래서 Medicaid 기금은 물론 정해진 우선성 원칙에 따라 제공되지만,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의료 서비스는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치료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분히 정의 원칙에 근거한 보건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비판가들은 오리건주의 계획은 생명 유지 치료보다는 비교적 사소한 치료를 선호하고, 가난한 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에 초점을 맞춤으로 보건의료를 다분히 '우리 대남'이라는 접근법을 재택하고 있으며, 복수한 상황이라든가 포함된 치료와 포함되지 않은 치료를 정확하게 밝혀 주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 계획의 지지자들은 국가의 보건정책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특별한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보건의료에서 나타나는 비효율성을 줄이는 데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리건 주법하에서 발생하는 희생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와 같은 민감한 문제는 풀기가 상당히 어렵다. 분명히 미성숙아, 노인 등은 자격상실로 배제된다. 오리건주법은 이런 무능력자를 차별한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제도가 가난한 자의 치료에 나타난 불평등을 줄여 주는 데 기여한다 할지라도, 현재의 의료보호 수혜자가 더 악화된다면, 이 계획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계획의 공평성은 가난한 자가 해악을 받느냐, 가난한 자의 지위를 향상해 줄 대안이 있느냐 등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나. 미시적 분배의 문제
미시적 분배란 부족한 의료자원을 구체적으로 어느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분배할 것인가의 물음을 말한다. 그 예로서 여기서는 미국의 전국적 장기할당 시스템인 유노스(UNOS, The United Network for Organ Sharing)의 Point System의 경우를 통해 의료자원의 미시적 분배문제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신장(kidney)의 경우만 소개하기로 한다.
신장은 보통 외과적 수술에 의해 회복(recover)된 후 얼음 상자 속에 넣어져 72시간까지 보관될 수 있다.
UNOS Point System에는 신장의 분배 및 할당을 위한 고려사항들로서 유전자 교차시험(genetic match)의 적합성과 신장이식을 위해 대기한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 대기기간은 UNOS 컴퓨터에 입력된 순간부터 시작된다. 가장 오래 기다린 환자에게는 1점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 75명의 대기자를 중 가장 오래 기다린 환자에게는 75 / 75 x 1 = 1점이 주어진다. 그리고 총 75명의 대기자들 중 15번째로 오래 기다린 환자에 계는(75 - 15)/ 75 x 1= 0.8점이 주어진다. 대기기간이 1년 경과한 후부터는 매 1년마다 0.5점씩이 가산한다.
면역유전학적 요소(immunogenetic factor) 또한 고려된다. 향원(antigen)의 mismatch(A, B, & Dr)에 따라 아래와 같이 점수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