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1. 14:28ㆍ의료윤리
1. 자살환자에 대한 의사의 관여
자살간섭 문제가 선행원칙과 결부될 경우, 자살이 당사자에게 해가 되는지의 여부가 핵심쟁점이 될 수 있다. 해가 된다면 선행원칙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는 온정적 간섭주의의 적용이 가능한 반면, 해가 되지 않는다면 온정적 간섭주의를 적용할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온정적 간섭주의의 적용문제를 놓고 볼 때, 자살이 당사자에게 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살기도자가 판단능력이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적인 사안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살기도자가 판단능력이 결여된 상태라면, 약한 온정적 간섭주의하에 자살을 먹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정신질환자가 자살하려 할 경우 그(녀)의 선택을 이성적인 선택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약한 온정적 간섭주의가 개입될 수 있다. 그러나 판단능력이 있는 성인이 이성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려 한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강한 온정적 간섭주의의 정당화 여부에서 찾아야 한다. 즉, 그러한 경우 자살이 판단능력이 있는 당사자에게 해가 되는지의 여부 및 해가 될 경우 그(녀)를 위하여 그를 저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의 여부 문제로 귀착된다.
그렇다면 과연 자살이 당사자에게 해가 된다고 볼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인간의 생명은 다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 왔다. 따라서 자살 반대론자들은 자살행위란 그 가장 고귀한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라는 견해를 보인다. 위의 견해가 맞는다면 자살은 당사자에게 해가 된다고도 보아야 할 것이며, 따라서 강한 온정적 간섭주의가 개입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살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강한 온정적 간섭주의의 개입 근거는 확고해진다.
그러나 자살이 당사자에게 해가 된다는 입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환자의 생명도 유익하다고 볼 수 있는가? 새로운 통증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으나, 현재의 의료 수준으로는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환자를 무의식 상태로 놓이게 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과연 위와 같은 경우, 환자 자신이 생을 마감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 환자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이 용이치 않다는 점에서, 강한 온정적 간섭주의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2. 응급환자에 대한 의사의 치료
의사에게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시켜야 할 선행의 의무가 있다. 특히 응급환자의 경우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요구된다. 예컨대 앞서 제시된 K 씨의 예에서와같이 비록 자살을 기도한 환자라 할지라도 환자를 죽게 방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응급실 의사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는 선행원칙을 따라야 할 의무와 응급치료 원칙(principle of emergency care)을 따라야 할 의무가 충돌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음의 두 경우를 생각해 보자. 첫째, 40대 남자가 피 묻은 붕대를 머리에 감은 채 - 병원에 귀속되지 않은 독립 - 응급실로 걸어 들어왔다. 그 환자는 초저녁에 싸우다 생긴 상처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며 상처봉합을 요구한다. 보험도 치료비도 없다고 하자 시립 병원으로 갈 것을 접수계가 권유했으나 그 환자는 한사코 그곳에서 치료해 줄 것을 고집하고 있다. 마침내 당직 의사가 나타나자 환자는 그를 붙잡고 동일한 요구를 계속한다.
둘째, 3일 연휴 주말 첫날에 89세의 남자 환자가 - 진찰 결과 아무런 질병도 발전되지 않았으나 열이 있다는 이유로 요양원에서 응급실로 이송되어 왔다. 요양원에서 함께 보낸 메모지에는 그 환자를 돌려보내도 다시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요양원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그는 여러 이유에서 재수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 환자의 유일한 친척인 종손녀 역시 입원 중에 있으며, 그녀에 따르면 요양원이 수용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비용을 제대로 지불할 수 있는 다른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서일 따름이다.
위와 같은 경우 응급실 의료진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응급치료 원칙에 따르면, 응급실 의사는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 경우 혹은 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와 같은 응급상황인 경우에만 치료를 해야 한다. 예컨대 배틴(Margaret Battin)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손 거스러미, 노이로제, 만성 기침병 등을 치료할 의무를 지니지 않으나 출혈이 있을 경우 혹은 뼈가 부려졌을 경우에는 치료를 해야 한다. 따라서 응급치료 원칙에 따르면 다음의 두 결론을 수용한다. 첫째 환자의 붕대를 벗기고 상처의 심각성을 확인해야 하며, 확인 결과 응급치료를 요한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치료를 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물론 응급치료를 요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경우에는 치료비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치료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반면에, 둘째 환자의 경우 비록 환자가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를 돌보아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위의 결론을 수용할 수 없음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응급실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일 뿐 아니라 첫째 환자는 본인이 응급실 시스템을 악용하려 하는 반면 둘째 환자는 무고한 희생자이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첫째 환자만을 치료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 이렇듯 위의 두 경우가 응급치료 원칙이 적용되는데 따르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응급실 의료진의 의무가 단지 응급치료 원칙을 따르는데 머물지 않고 선행원칙을 따라야 하는 데까지 확장된다면, 응급치료를 요하지 않는 환자에 대한 치료의 의무도 지닌다고 보아야 한다. 선행원칙을 따를 경우 위의 두 환자를 차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즉 둘째 환자를 차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응급치료 원칙을 적용할 때 따르는 문제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응급실 의료진의 의무가 선행의무에까지 미친다는 데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환자의 경우 선행원칙에 따르면 환자의 상처를 확인하고 치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발생된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가령 싸움에 연구된 경위 등을 묻는다든지 하며 환자의 폭력적인 성향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간에 쫓기는 응급실 의사에게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머리에 가벼운 상처를 입은 8세 아이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진찰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그 아이의 부모는 형이 비슷한 상황에서 두 개골절(skull fracture)이 된 적이 있으므로?우선 사진을 찍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응급실 의료진은 두 개골절이 되었을 가망성이 극히 희박하므로 아이를 불필요하게 방사선에 노출시킬 뿐 돈 낭비에 불과하며, 방사선 사진이 필요한 다른 환자들의 치료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부모를 설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위의 경우 비록 두 개골절일 확률이 극히 희박하더라도 따라서 아이를 불필요하게 방사선에 노출시킬 이유가 없더라도, 부모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X선 사진을 찍는 것이 의미 없는 치료라 볼 수 정신질환자가 자살하려 옳지 못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또한, 부모의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환자들의 치료를 지연시키면서까지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다른 환자들이 정신질환자가 자살하려 단지 걱정을 덜어주기 위하여 X선 사진을 찍는 정신질환자가 자살하려 옳다고 볼 수 없다. 이렇듯 선행의무는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 한계가 설정해야 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40대 남자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다. 응급실 의사는 선행원칙을 지켜 환자의 상처를 확인하고 치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발생될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가령 싸움에 연루된 경유 등을 물음으로써 환자의 정신적인 상태를 확인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그 의무는 다른 환자를 돌보는 데 피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속력을 지닌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급히 돌보아야 하는 다른 환자가 있을 경우 단지 상처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선에서 그 한계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