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에서 환자 자율성
2025. 3. 7. 11:20ㆍ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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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자율성 존중의 이유
자율성 존중원칙이 하나의 윤리원칙으로 일반적 상황에서는 적용될 수 있지만, 의료라는 임상현장에서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의사는 환자보다 전문지식을 갖고 환자를 돕는 처지에 있지만, 환자는 비록 자신의 신체에 이상이 발생하였지만, 그 증상이나 치료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의사로부터 무엇인가 도움을 받아야 한 처지에 있다. 이런 비대칭성 때문에 의사와 환자의 전통적 관계는 다분히 " 의사 상위 환자 하위" 혹은 의사는 아버지, 환자는 자식으로 비유되곤 했다. 심지어 의사는 임상현장에서 배의 선장 역할을 감당한다는 입장에 따를 경우, 환자의 자율성 존중이라는 윤리원칙은 임상현장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자율성 존중원칙은 임상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입장이 현재 의료윤리학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엇보다 환자의 자율성 존중은 일차적으로 진료행위나 실험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로부터 환자나 피검자를 보호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실제로 일상현장이나 임상연구에서 환자의 권익이 손쉽게 침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인권 침해로부터 환자를 보호하자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환자의 자율성 존중이나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이다. 진료 및 간호에 앞서 환자로부터 동의를 얻자면 미리 환자의 증상이나 진료 후의 예상징후나 실험내용 등을 자세히 환자에게 설명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환자는 자발적으로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성 존중원칙의 배후에는 인간존중의 사상이 깔렸다. 즉, 환자를 단순히 하나의 고장 난 기계로 보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우하자면 환자의 자율적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의 대두와 환자급증 때문에 환자들은 인간적 진료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 수동적 위치에 있던 환자들의 권리인식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비자운동이 의료계에도 확산하여 환자중심의 의료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비록 환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병원 혹은 의사를 찾는다 해도 여전히 환자는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격성의 본질인 자유를, 즉 자기 결정권을 지닌다. 게다가 전문지식에서 의사와 환자의 비대칭성의 정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 환자들도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학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어 자신의 건강에 대해 문외한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의사협회는 환자권리장전을 통해 환자의 자율적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의료행위는 환자의 신체에 대한 일종의 침습적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신체에 대한 침습적 행위는 그 당사자로부터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상해행위이다. 그래서 임상현장에서 의사나 간호사의 의료 혹은 간호행위에 환자의 동의가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다. 이제 의사에게 환자로 그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다.
환자권리 보호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의료인들의 자기 보호 차원에서도 환자의 자율성 존중은 매우 중요하다. 환자의 권리 신장과 더불어 의료사고는 법정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급증하는 의료사고의 책임소재 물음이 대두하면서 법원은 환자의 자율성이나 동의 여부를 중요한 판결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즉, 의사나 간호사가 환자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고 진료한 경우, 법원은 설명의무 위반을 들어 그 책임을 일차적으로 의료인에게 지우고 있다. 이런 현실적 이유 때문에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은 자기 보호 차원에서 점점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의료기술의 대두 및 삶의 질에 대한 관심증가 때문에 무엇이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인지 확연하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의사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여러 치료 대안 가운데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의술을 베풀어야 한다. 예를 들어,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말기 암 환자에게 담당 주치의가 수술하고자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수술이 과연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인지 의사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 수술한다고 해서 환자의 상태가 호전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릴 경우 의사는 자신의 의학적 판단에만 따라서 수술을 집도할 것인가?
이런 어려운 물음을 이제는 환자 스스로 결단에 맡기자는 것이 자율성 존중원칙이 추구하는 바이다. 이는 환자 자기 뜻에서도 자기 삶의 주체로서 자기 신체와 생명에 관해 자율 인으로 존중받는 일이요, 의사로서도 한 인간의 생사와 같은 중대한 물음을 결단하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단순히 의술을 베푸는 의사가 아니라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되는 데 있어서 환자의 자율성 존중은 하나의 기본적인 윤리원칙에 속함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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