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구분의 세번째

2025. 3. 10. 17:10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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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결과와 단순히 예견한 결과


의료행위에서 자주 발생하는 상황 중의 하나는 계획된 의료행위가 두 가지 효과나 결과, 즉 하나는 좋고 하나는 나쁜 효과를 갖는 경우이다. 전자는 합법적이며 또한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효과이다. 반면에 후자는 해악이며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효과이나, 전자와 분리할 수 없는 효과이다. 이러한 구분의 근거는 의도한 결과(intending effect)와 단순히 예견한 결과(merely foreseeing effect)는 도덕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신념이다. 

 

이중효과

 

이러한 신념을 정식화한 것이 자연법 사상과 가톨릭 전통에서 비롯되어 의무론적 윤리체계에서 널리 수용되고 있는 이른바 ' 이중효과원리'(principle of double effect)이다. 이중효과원리는 모든 의료 행위가 갖는 양면성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모든 의료행위는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아울러 지닌다. 이때 의사가 선한 결과를 의도하였는데, 그 치료행위 때문에 불가피하게 악한 결과가 부작용(side effect)으로 발생한다면 의사는 악행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것이 이중효과원리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이중효과원리는 부작용이 있는 약을 복용하는 것에서부터 고통과 심각한 후유장애가 따르는 모든 수술과 보다 중대한 치료적 임신중절, 생명 의료적 실험, 안락사, 의사조력자살 등 생사의 문제를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도덕적 구분의 중대한 근거와 이유로서 제시되고 있다. 이중효과원리는 또한 피해보상과 처벌이 따르는 민 · 형법과 아울러 민간인의 살상이 필연적으로는 전략적 폭격의 경우를 옹호하거나 거부하는 전쟁윤리의 주요한 원리로써 원용되고 있다.


이중효과원리는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이중효과원리는 하나의 도덕원칙으로서 다음과 같은 일정한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하나는 좋고 하나는 나쁜 두 가지 효과나 결과를 갖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이 합당한다고 규정한다. ① 행위의 본래적 성질(intrinsic guality of the act) : 행위 자체가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행위여야 한다. ② 의도(intention): 행위자의 의도가 나쁜 결과에 있지 않고 좋은 결과에 있어야 한다. ③ 인과성(causality) : 좋은 결과는 나쁜 결과의 수단이 되어 얻어져서는 안 된다. ④ 균형성(proportionality):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는 그 중요성에서 균형이 잡혀야 한다.


첫째 조건은, 우리는 결코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도덕원리를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어떤 행위가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만으로 어떤 행위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비결과 주의적 입장이 개진되고 있다. 둘째 조건은, 이중효과원리의 핵심이다. 우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단순히 예측할 뿐이지 그것을 의도하지 않으며 단지 그것을 선한 결과를 위해서 용인하는 것뿐이다. 형사재판에서도 범행의도(means rea)는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의도적 살인은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이나 우발적 혹은 과실적 치사보다 더 나쁘다. 셋째 조건은, 나쁜 결과가 좋은 결과를 낳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켜 주지 못한다는 전통적인 도덕원리를 재진술해 주고 있다. 넷째 조건은, 어떤 행위가 나쁜 결과를 낳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를 수행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불가피할 만큼 중대한 균형 잡힌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명확하게 규정된 이중효과원리가 적용된다면, 생사가 달린 문제를 명확하게 판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이중효과원리의 네 가제 조건들에 만족할 경우, 나쁜 결과가 인간의 죽음을 가져온다고 해도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모가 자궁암에 걸려 생명이 위독한 경우 산모의 생명을 구하려는 의도로 자궁암 수술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하다. 이 경우 자궁암 수술은 그 자체로 보면 결코 허용 불가능한 치료는 아니며, 또 태아의 죽음이 산모를 살리기 위한 수단인 것도 아니다. 나아가서 비록 태아의 죽음이 예견되긴 했지만, 의사는 단지 산모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의도하였으며, 산모 생명이라는 선한 결과가 태아의 죽음이라는 나쁜 결과를 능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중효과원리의 네 가지 조건을 만족하게 하므로 자궁암 수술에 따른 임신중절을 허용 가능한 것으로 기독교 전통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이유를 잘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중효과원리에 대한 윤리학적 논란과 실질적 적용에서의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중효과원리는 행위와 결과의 구분, 의도한 결과와 의도하지 않았으나 예견된 결과의 구분을 동해 인간의 살인은 어떤 경우에도 불가하다는 절대주의적 편협성에서 자연법과 기독교적 전통과 양면성 때문에 윤리설을 해방시킨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행위의 동기나 의도를 중시하는 칸트(I. Kant)의 양면성 때문에 윤리설과는 달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는 한 행위의 행복과 양면성 때문에 중요한 요소를 간주하여 그 결과에 따라 행위를 평가한다. 따라서 공리주의자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가 나쁜 결과를 피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것에 대한 총체적인 효용결과 계산을 통해서만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특히 행위와 그 결과가 밀접하여 그 결과가 그 행위의 필연적 양면성 때문에 행위와 결과를 엄밀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치료행위 때문에 악한 결과를 낳은 행위가 선한 결과를 낳기 위한 불가분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중효과원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행위와 그 결과의 구분보다 행위의 의도에 대한 구분일 것이다. 이중효과원리는 예상한 결과와 예상하지 못한 결과 중 예상한 결과만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다시 의도한 결과와 단순히 예견한 결과로 구분하는 셈이다. 그러면 예견하지 못한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 행위의 예견하지 못한 결과로 타인에게 중대한 피해를 준 경우 이를 단순히 의도적인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하다고 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예견치 못한(더 정확하게는 적어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돌발사고를 잘 대처하지 못한 의사는 그 책임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은 충분한 도덕적 사법적 근거가 있다. 의료전문인은 그들이 선택한 의료행위에 대한 모든 결과를 고려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서 이중효과원리를 통해서 면책받을 수 없다. 의료전문인은 의도한 결과만이 아니라 모든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결과에 관해서도 책임을 져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비 예견적 결과가 합당한 진료를 다 했다는 조건 아래 발생했다면 그것은 물론 면책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의도한 결과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예견된 결과가 과연 구분 가능한가를 물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고 해도 위의 자궁 절제술에 따른 임신중절 사례에서 우리는 산모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산모는 태아의 죽음을 의도하고, 자궁암 치료를 단지 예견할 수도 있다. 더욱이 태아의 죽음이 현대의술로는 불가피했다면, 결국 태아의 죽음은 산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반론이 가능하다. 공리주의자들은 의도에 대한 구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오히려 총체적인 이득 - 손실 계산에 따라 행위를 평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예견된 결과가 아무리 나쁘더라도 그것이 이중효과원리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언제나 정당화된다고 할 때, 수많은 피해가 이중효과원리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된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중효과원리는 이렇게 본다면 다른 두 결과가 얽히는 모호한 상황을 분석하는 방법을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그 모호성을 완전히 제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행동하기에 앞서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우리의 양심의 소리를 의미심장하게 경청하여 그 행동에 대해서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제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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