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구분 마지막 네 번째

2025. 3. 10. 17:21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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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것과 죽게 방치하는 것 


 죽이는 것(killing)과 죽게 방치하는 것(letting die)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은 남에게 해악을 행함과 해악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둠 사이의 구분으로서 악행 금지원칙이 선명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널리 간주하여 왔다. 그 구분의 논리적 윤리적 근거는 행위(action)와 무위(inaction / omission)의 구분을 죽임의 물음에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행위란 적극 무엇을 행함을 의미하고, 무위는 소극적으로 무엇을 행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대체로 행함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는 그 행위자가 책임을 지지만, 무위로 인한 결과에 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죽이는 것과 죽게 방치하는 것의 전통적 구분에 관련된 신념이다.

 


이렇게 되면,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죽이는 것은 살인에 해당되는 악행이나, 소극적으로 죽도록 방치하는 것은 악행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의료현장에서 발생하게 된다.

 

죽이는 것과 죽게 방치하는 것의 차이는 특히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고 간주되어 왔다. 죽이는 것과 죽게 방치하는 것의 차이가 안락사의 허용범위를 결정짓는 배경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죽게 방치하는 행위는 죽이는 행위와는 달리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독극물을 투여하여 환자를 죽이는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될 수 없지만,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거나, 회복될 가망이 없는 폐렴 환자에게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을 때 등은 환자를 죽게 방치하는 경우이므로 소극적인 안락사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1973년 미국의사협회가 소극적 안락사만을 옹호하는 전통적 견해를 수용한 이래, 각국에서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반대자들은 이 구분이 도덕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동기와 결과가 동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이첼스(J. Rachels)는 아들이 부모 유산을 노려 화장실에서 넘어진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지 않아 죽게 방치하는 것이나,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아 구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소극적 안락사를 수용할 수 있다면, 적극적 안락사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푸트(P. Foot)는 죽이는 것과 죽게 간주하여 것 사이의 도덕적 구별이 되지는 도덕적 중요성은 어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떤 사람을 죽게 허용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데 있어야만 한다는 것으로 응수한다. 간주하여 따라서 레이첼스의 주장이 의료현장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전통적 구분의 옹호자들은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할 때 간주하여 논증' (slippery slope argument)에 따른 생명 경시현상과 사회적 신뢰의 상실 등 사회적으로 간주하여 결과를 든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간주하여 해했을 때의 도덕적 죄책감이 더 크다는 심리적 사실에 의거한 인간의 법감정과 도덕감정에 호소하면서 그 구분을 옹호하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고안한 기계와 약물을 제공하여 환자가 자살하게 하거나 혹은 자신이 직접 약물을 투입함으로써 환자를 안락사시켜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킴으로써 의사조력 자살의 대명사가 된 커 보키 안(J. Kevorkian) 사례는 적극적 안락사가 왜 허용될 수 없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1983년 미국 대통령 윤리문제 자문위원회는 행위와 무위의 구분을 통해 죽이는 것과 죽게 방치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에 상당히 유보적인 평가를 내린다. 위원회는 물론 치료를 보류하거나 생략하여 죽음을 허용하는 모든 의료 행위가 수용될 수 있는 것은 환자나 그 대리인이 그러한 선택을 한 경우 도덕적으로 수용되고 그것은 살인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위원회는 독극물을 투입하는 적극적 안락사가 도덕적 법적으로 실감하게 부당한 일임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원회는 행위(작위)와 무위(부작위 : 행위의 보류 / 생략 / 포기)의 단순한 차이가 결코 무엇이 도덕적으로 한 행위인가를 결정해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어떤 특정한 행위나 부작의 적 수용 가능성은 다른 중대한 고려사항들, 즉 달성해야 할 이익과 예상되는 피해의 균형,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무, 행위와 부작위에 관련된 위험성, 결과의 확실성 등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특히 위원회는 행위와 무위의 구분은 도덕적 책임에 대한 타당하지 못한 다음과 같은 신념을 전제하고 있다고 비관한다. ① 인간의 행위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태의 진행에 대한 하나의 간섭, 개입, 혹은 관여(intervention)이다. ② 무위는 관여가 아니다. ③ 인간은 직접 관여한 것만 책임이 있다 (혹은 인간은 적어도 의도적인 관여에 의도적인 무위보다 더 큰 책임을 진다. ). 이러한 도덕적 책임에 대한 신념은 ' 개입' 혹은 ' 관여'의 개념에 대한 적극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박약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불 관여(회복불능 상태 시 생명연장 장치의 거부, 심폐소생술의 거부) 계획의 적극 한 행위(문서로 만들어 진 당부나 유언)를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사태의 진행방향은 관여만이 아니라 불 관여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분명히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사태의 발생을 - 합리적으로 충분히 - 막았을 수 있었다고 믿는 것이 타당하다면, 그 사람은 불 관여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진료 중인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는 소극적 안락사라기보다는 엄밀히 말해 그 결과의 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적극적 안락사로 분류되어야만 할 것이 아닌가? 이제 인공호흡기가 특수치료가 아니라 일상치료 방법이 되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죽이는 것과 죽게 방치하는 것의 구분보다는 오히려 정당화되는 죽임(justified killing) 정당화되지 않는 죽임(unjustified killing)의 구분이 더 유용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죽이는 것(엽기적 살인)이 죽게 방치하는 것(식물인간의 치료를 중단하는 일)보다 더 나쁘지만 만, 또 어떤 경우에는 죽게 방치하는 것(응급환자를 구할 수 있음에도 구하지 않는 경우) 이 죽이는 것(환자의 요구에 따라 안락하게 죽이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악행 금지원칙의 구체적인 적용범위와 관련해서 그 분수령(threshold)으로 제시된 생명유지 치료의 보류와 철회, 특수치료와 일상치료, 의도한 결과와 단순히 예견된 결과, 죽이는 것과 죽게 방치하는 것이라는 네 가지 전통적인 구분은 단지 대략적인 규칙(a rule of thumb) 일 뿐이며 절대적인 도덕적 구분은 아니다. 구체적 상황 속에서 그 구분이 모호하거나, 혹은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 혹은 그러한 전통적 구분의 준수가 오히려 사태해결을 방해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조차 있으므로, 단순 흑백논리와 ' 전부 아니면 무'라는 조건 없고 기계적인 네 가지 구분의 적용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위의 네 가지 구분 및 생명 의료 관행에 관련된 제반요소를 의무적인 진료와 선택적인 진료의 구분을 통해서 비판적으로 흡수 수용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일부 학자들은 의무적인 진료와 선택적인 진료의 구분을 통해서 악행 금지기준을 세우고자 시도하고 있다. 의무적인 진료는 ' 해야만 하는 진료' (obligatory to treat)와 ' 금지된 진료' (obligatory not to treat)로 나뉜다.

 

특히 해야만 하는 진료는 환자의 이익에 관한 합당한 기대가 있어야 하고, 과도한 비용과 고통, 그러고 다른 불편함이 없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선택적인 진료(optional treat)는 해도 그만이고 하지 않아도 무방한 ' 중립적인 진료' (neutral treatment)와 하지 않아도(혹은 해도) 무방하나, 하면 - 혹은 하지 않으면 도덕적 선행으로 인정될 수 있는 ' 의무 이상의 진료' (supererogatory treatment)로 나뉜다.

 

따라서 의사에게는 금지된 진료와 해야만 하는 진료의 경우 그것들을 따르지 않으면 악행 금지원칙을 위반하게 된다. 하지만 선택적 진료의 경우에는 의사와 환자의 합의에 따라 진료행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진료의 구분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고려할 때 환자 자신이 받는 이득과 피해(혹은 이득과 비용, 이득과 위험)에 대한 정확하고도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균형적이고 신중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용편익 분석의 무조건적 수용이나 산술적 계산으로의 전락은 결과주위로 경도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위무론적이고 원칙주의적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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