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원칙

2025. 3. 10. 18:16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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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행원칙의 정의 


선행(benseficence)이란 일상적으로 친절한 행위, 사려 깊은 행위, 동정적인 행위, 자비로운 행위, 이타주의적 행위 등을 지칭한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에게 행복을 안겨 주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행위를 선행이라 부르며,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하여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 역시 선행이라 일컫는다. 


이렇듯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야 할 소극적인 의무(negative duty)및 타인을 도와주어야 할 적극적인 의무(positive duty)는 선행의무(duty of beneficence)로 집약될 수 있으며, 이는 선행원칙(principle of beneficence)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선행원칙은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말 것을, 그리고 타인의 이익을 증진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프랑케나(William Frankena)가 제시하는 다음의 네 가지 규칙이 선행원칙의 내용으로 이해되고 있다.
①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라. 
② 타인에게 발생될 피해를 예방하라. 
③ 타인에게 발생된 피해를 제거하라. 
④ 타인의 이익을 증진시키라. 


선행원칙의 소극적인 면을 반영하고 있는 ① 및 적극적인 면을 반영하고 있는 나머지 세 규칙 모두를 따라야 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인가? ① 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악행금지원칙( grinciple of nonmaleficence )을 의미한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기, 폭행, 살인 등이 허용될 수 없다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며, 그 대표적인 이유로 그들 행위가 악행금지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사기, 폭행, 살인 등이 우리 모두에게 허용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① 을 따라야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구속력을 지님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가령 의사는 환자의 개인정보를 누설하지 말아야 하고, 환자가 원하지 않는 치료방법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 소극적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위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혹은 특정한 치료방법을 거부할 수 있는 등의 환자의 소극적인 권리를 침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② 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 역시 의무의 범주 내에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철로 위에서 잠이 든 취객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를 철로변으로 옮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쳤을 경우 살인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며, 심지어 철로면에서 잠을 자고 있는 취객을 철로 위에 올려놓고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③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그 예로 1964년 3월, 38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아일랜드 자신의 집 앞에서 피한(Winston Moseley)에게 살해당한 제노비스(Kitty Genovese)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제노비스는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괴한의 칼에 찔린다. 치명상은 당한 그녀의 도와달라는 외침에 한 이웃남자가 그녀를 놓아주라고 소리치자 괴한은 자리를 뜬다. 그러나 나와 보는 사람도 신고하는 사람도 없음을 알게 된 범인은 2차로 공격을 가한다. 괴한은 차를 타고 도주했으나 잠시 후 다시 돌아와 그때까지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아파트 현관에서 기어가고 있던 제노비스를 다시 찔러 살해한다. 38명의 이웃들이 이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으나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프랑스에서 이민은 한 여성뿐이었으며 그나마 처음 공격을 당한 시점으로부터 50분이 경과된 후였다. 신고 2분 만에 경찰이 도착했으나 제노비스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 경우 그녀의 죽음을 방관한 38명의 주민에게 최소한 수화기를 들고 경찰에게 신고하는 수고를 감수할 도덕적 의무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사와 환자는 계약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 의사에게 ② 와 ③ 운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환자가 의사에게 치료를 의뢰하고 의사가 그 의뢰를 수용했다는 것은 쌍방 간에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환자의 복지증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묵시적인 계약이 체결됐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와 계약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환자의 복지증진이라는 목표에 부합되는 의무를, 즉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겠다는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사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④ 는 어떠한가? 이를 지킨 사람에게 도덕적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나, 그것은 의무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프랑케나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케나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나머지 세 규칙과는 달리 ④ 가 의무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면, 선행원칙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선행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프랑케나의 견해대로 그를 따르지 않아도 도덕적 비난을 면할 수 있는가? 혹은 그를 따르는 것은 또 다른 선행으로 보아야 하는가?


흉기를 소지한 괴한으로부터 위험에 처해 있는 행인을 구하거나 철로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목숨을 걸고 구함에 대하여 도덕적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다수는 그렇게 하는 것을 의무라고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예들이 ④ 가 의무의 범주에서 벗어남을 보여주지는 못하며, 단지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 완전한 의무(perfect duty)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을 뿐임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의료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환자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있고 의사와 환자는 계약관계에 놓여 있음을 상기할 때, 의사에게 ④ 또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지적된 바와 같이 의사는 환자의 개인정보를 누설하지 말아야 하고, 환자가 원하지 않는 치료방법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 소극적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의 병세 및 치료방법에 대하여 설?명해야 하고, 환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할 적극적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는 것이 자신의 병세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거나 모든 치료에 대한 사진 동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등 의 환자의 적극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길인 동시에 환자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의료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사를 찾는 이유는 질병치료를 위해서며 이는 다시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라는 것 역시 ④ 가 의무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사는 환자가 자신을 찾는 이유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곧 환자의 이익에 부합되는 치료상의 결정을 내리겠다는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보아야 한다. 계약관계가 성립되었다는 것은 의사는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의사 자신이 최선책이라 여기는 치료방법을 환자에게 권유할 의무를 안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의사로부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들을 환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의사표시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듯 ④ 역시 의무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볼 수 없으며, 특히 의사와 환자의 관계 구도에서 -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구도에서와 같이 - 위의 의무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위의 네 규칙 중 어떤 규칙이 비교상의 우위를 점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프랑케나는 위의 네 규칙을 순서대로 배열하여, ① 을 지켜야 할 의무가 가장 크며 ②, ③, ④ 순으로 구속력이 줄어든다는 견해를 보인다. ① 을 따라야 할 의무와 나머지 세 규칙을 따라야 할 의무를 비교할 때 그들이 동일한 정도의 구속력을 지닌다거나 그들 세 규칙의 구속력이 ① 의 구속력에 앞선다고 볼 수 없음은 비교적 명확하다. 가령 ② 를 따라야 할 의무가 ① 을 따라야 할 의무와 동일한 정도의 구속력을 지닌다면 난치병 정복을 위한 생체실험을 금하기 어려울 것이며, ① 을 따라야 할 의무보다 앞선다면 거부반응 없는 장기 확보를 위해 인간을 복제하는 것 역시 막기 어려울 것이다.
① 과 ④ 를 비교할 때 전자의 구속력이 후자의 그것에 앞선다는 데는 설명이 필요치 않으며, ③ 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고 보아야 한다. ③ 을 따라야 할 의무가 ① 을 따라야 할 의무와 동일한 정도의 구속력을 지닌다면, 임산부가 원하는 한 임신기간에 무관하게 임신중절을 금하기 어려울 것이며, 소녀가장을 돕기 위하여 수술비를 마련 못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하여 도둑질하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③ 을 따라야 할 의무가 ① 을 따라야 할 의무에 앞선다면 이식받을 장기가 없어 죽어 가는 환자를 살리기 위하여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이렇듯 ① 과 나머지 세 규칙을 비교할 때 전자를 따라야 할 의무가 후자를 따라야 할 의무에 앞선다고 보아야 하며, ② 와 ③ 의 구속력이 ④ 의 그것에 비하여 크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자식들을 굶겨 가면서까지 사업에 실패한 친구를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이식받을 장기가 없어 죽어 가는 환자를 위하여 의사가 자신의 장기를 제공하지 않아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② 와 ③ 중 어느 쪽의 구속력이 앞서는지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다음의 경우를 가정해 보자. 치명적인 괴질로 10명의 환자가 입원 중에 있다. 치료제는 10명분밖에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다, 괴질의 확산 추세로 보아 머지않아 무수한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 치료제를 현재 입원 중인 10명의 환자에게 투약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앞으로 입원하게 될 환자들을 위하여 비축해 두는 것이 옳은가? 이 경우 현재 입원 중에 있는 환자들에게 투약하는 것이 옳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위의 예를 수정해 보자. 치명적인 괴질로 10명의 환자가 입원 중에 있다.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 명당 10cc의 치료제를 투약해야 하나, 치료제는 100cc밖에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며, 빠른 시일 내에 치료제를 구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다. 괴질의 확산 추세로 미루어 수많은 환자가 곧 입원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앞으로 입원하 게 될 환자 중 초기 단계의 환자는 l0cc만으로도 치유할 수 있다고 할 때, 치료제를 100명을 위하여 비축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현재 입원 중에 있는 10명에게 투여하는 것이 옳은가? 이 경우 첫째 경우와는 달리 우리의 직관이 100명을 치료하기 위하여 치료제를 비축하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기운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① 을 따라야 할 의무는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 완전한 의무의 성격을, 그리고 나머지 세 규칙은 다른 의무와 충돌할 경우 실제적 의무가 되지 않을 수는 조건부 의무(prima facie duty)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선행의무에의 한계에 대하여(② ③ ④ 를 따라야 할 의무의 한계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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