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1. 14:33ㆍ의료윤리
1. 정의(justice)의 형식적 정의(definition)와 실질적 정의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돌려주는 것"으로 정의(definition)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노동자에게는 그에 맞는 몫으로서 임금을 주어야 정의가 이루어지고, 남의 물건을 훔친 도둑에게는 그에 걸맞은 처벌이 가해져야 정의로운 사회가 되고, 계약위반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질 때 상거래가 정의롭게 될 것이다.
이때 처벌과 관련된 정의를 형사적 정의(criminal justice)라 하고, 보상과 관련된 정의를 시정적 정의(rectificatory justice)라 한다. 형사적 정의는 주로 형법(criminal law)을 통해 구체화 되고, 시정적 정의는 민법(civil law)을 통해 구체화된다. 한편,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는 사회 내에서 부족한 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한 회사 내에서의 임금 결정이나 한 국가에서의 세금이나 기회, 의료자원의 배분 등과 관련된 정의가 여기에 해당된다.
정의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돌려주는 것이라면, 그것을 결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우리는 " 같은 것은 같게 취급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라" (Equal must be treated equally, and unequal must be treated unequally)고 일단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말하는 형식적 정의 원칙(principle of formal justice)이다.
하지만, 형식적 정의의 원칙은 어떤 점에 있어서 같은 것이 같게 취급되어야 하는지 그 내용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두 개인이 실제로 같은지, 다른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아무런 실질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 사람을 포함하여 - 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같으면서, 동시에 다른 어떤 면 에 있어서는 같지 않다. 예를 들어, 간암 환자와 췌장암 환자가 A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하자. 이 두 환자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환자이며, 그것도 암환자라는 점에 있어서 같다. 반면에 간암 환자는 남자이고 췌장암 환자는 여자이며, 또 간암 환자는 35세이고 췌장암 환자는 40세라면, 이 점에 있어서는 두 환자는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정의의 형식적 원칙에 따를 경우 병원은 이 두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 한 마디로 형식적 원칙은 '같다는 것'을 규정할 아무런 실질적인 기준을 지니고 있지 않기에 이에 대해 답할 수가 없다.
위 예에서 보듯 각자에게 적당한 몫을 나누어 주는 실질적인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한, 이런 형식적 정의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따라서 불평등을 정당화시켜주는 실질적인 분배기준, 즉 정의의 실질적 원칙들(material principle of justice)이 요구된다. 먼저 정당한 불평등의 기준에 관한 고전적 원칙들을 살펴보자. 전통적인 정의론이 분해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크게 다음 네 가지이다.
① 능력에 따른 분배
② 성과에 따른 분배
③ 투여된 노력에 따른 분배
④ 필요에 따른 분배
이 네 가지 원칙은 일정한 총량의 재화를 두 사람 이상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관한 잣대들이다.
원칙 ① 은 재화가 관련된 사람들의 능력(merit)에 비례하여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진 자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 정당하다(예: 고등교육의 분배), 원칙 ② 는 관련된 자들이 생산해 낸 성과(contribution)의 양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적게 생산한 자에게 더 적게 주는 것은 정당하다(예 : 회사의 임금책정). 원칙 ③ 은 관련된 사람들이 투입한 노력(effort)에 비례해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더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더욱 많이 주는 것이 곧 정의가 된다(예 : 자식에 대한 부모의 칭찬). 원칙 ④ 는 관련된 사람들의 필요(need)에 비례해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더 적게 필요한 자에게 더 적게 주는 것은 당연하다(예 :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필수품의 분배).
이 밖에도 균등한(equal ) 분배, 관련 당사자의 자유시장교환(free market exchange)에 의한 분배, 계약에 따른 분배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