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7. 10:51ㆍ의료윤리
1. < 히포크라테스 선서 > 그 역사적 윤리적 의의
오늘날 근대 서양의학의 윤리의 기원은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경)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리스의 코스섬을 중심으로 한 유명한 의학 종과의 핵심인물이었는데 그 학과를 통해 의학의 전문화와 세속화가 이루어졌다. 독립된 전문직업으로서 의학의 전문화(professionalization)는 그 집단만의 특별한 교육체계의 확립 및 규범의 준수와 떨어져 생각될 수 없는데 코스의 히포크라테스 학과에서 그것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들은 유명한 ' 선서' (Oath)를 통해 이를 정식화하였는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폴로와 아스클레피오스, 하이게이아와 파나케아 및 모든 신들과 여신들에게 그들을 증인으로 하여 내 능력과 판단을 다해 이 선서와 맹세를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나에게 의술을 가르쳐 준 스승을 부모와 같이 여기며 평생을 그의 동료로 살고, 그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며 그의 아들을 내 형제와 같이 여기고, 그가 원한다면 어떤 대가나 계약 없이 의술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나의 아들과 나의 스승의 아들, 또 계약을 맺고 의료법에 따르기로 맹세한 학생들에게 지식과 가르침을 주겠으며 그 외의 누구에게도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의 이득을 위해 식이요법을 처방하겠습니다. 그를 위험과 불의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
나는 누가 원할지라도 독약을 주지 않겠으며 그 사용을 암시하지도 않겠습니다. 여성에게 낙태약을 주지도 않겠습니다. 순결과 거룩함으로 나는 내 생명과 의술을 지키겠습니다.
나는 수술칼을 사용하지 않겠으며 결석 환자에게도 그러하지 않겠습니다. 이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을 위해 양보하겠습니다.
어떤 집을 방문하더라도 나는 모든 의도적인 불공정함이나 실수가 없이 환자의 이익만을 중히 여기겠습니다. 특히 노예든 자유인이든, 남자나 여자와의 성적인 유혹을 피하겠습니다.
환자의 치료 중에 혹은 치료 중이 아니더라도 환자의 생명과 관련하여 보고들은 모든 것에 대해 비밀을 지키며, 그것을 누설하는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겠습니다.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훼손하지 않는다면 나로 하여금 삶과 의술을 즐기고, 앞으로 올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명성을 얻고 영예롭게 해 주소서. 만약 이를 어기고 거짓 맹세를 했다면 그 반대의 경우를 당하기 바라옵니다.
위 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1) 스승을 존경하고 동료를 존중할 것, 2) 환자의 이익과 생명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 3) 환자에게 위해를 입히지 말 것, 4) 환자의 비밀을 지킬 것, 5)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일(방광결석 제거술)은 하지 않을 것, 6) 독약이나 낙태약을 주지 않을 것, 7) 환자와 성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품위 있는 삶을 살 것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오늘날 의사의 직업윤리로서 여전히 유효하게 살아남아 있다.
이외에도 히포크라테스 전집 등 당시의 문헌에 나타난 윤리와 관련된 규범을 보면 동료들 간의 지나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진료비를 내리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는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였다. 또한 자신의 힘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는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윤리적으로 바람직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윤리규범은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의사들이 다양한 경쟁직종, 약종상, 이발사, 주술사 등과 차별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종교적 신앙과 구별되는 의사의 합리적인 윤리규범을 처음으로 정식화하였으며 의료 전문직의 기틀을 수립하였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1948년 제네바에서 열린 2차 세계의 사회(WMA)에서 보다 현대적인 형태의 <의사 선서>로 반포되었는데 오늘날 흔히 <히포크라테스 선서>라 알려진 문헌은 이를 가리킨다.
2. 기독교 등 고등종교의 등장과 이것이 의료윤리에 미친 영향
기독교가 등장하여 서구세계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의학과 의료시술 역시 그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의료윤리의 역사에서 볼 때 기독교의 가장 큰 영향은 병자에 대한 고대의 관념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고대 헬레니즘 세계에서 병자는 가엾기는 하지만 사회 전체의 기준으로는 별로 가치가 없는 존재였으며, 특히 불구나 치료불능의 폐질자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예컨대 스토아 철학에 의하면 자기 생명이 사회적 존재자로서 의미가 없을 때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은 오히려 용기 있는 사람의 바람직한 행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독교의 전과에 따라 사람의 목숨은 신의 선물이고 자신의 생명이라고 하여 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고대의 자살옹호는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했다.
낙태 역시 신이 내린 생명을 빼앗는 큰 죄악으로 생각되었다. 예수는 앉은뱅이, 소경, 중풍병자 등 헐벗고 굶주린 많은 환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이들을 기적적으로 치료해 주었다고 하는데, 기독교인들도 예수의 본을 따라 환자와 소외받은 자에 대한 돌봄을 신앙인의 큰 미덕으로 설파하였고 이를 실천하였다. 그 결과 대도시에는 노약자와 환자들을 수용하여 보살피는 병원이 등장하였고 큰 수도원이나 성당은 시약소를 부설하여 가난한 환자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고 이들을 돌보았다.
물론 이슬람교나 불교 등 고등종교 역시 생명을 존중하고 병든 이를 보살피는 일이 선 한 행위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중세 이슬람 사회에서는 훌륭한 시설을 갖춘 많은 병원을 지어 환자들을 보살폈으며 의사들은 종종 당대 일류의 지식인이자 철학자였다. 중세 이슬람 사회에서의 의학의 발전은 여기에 기인한 바가 크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는 불교가 마찬가지 기능을 하였다. 고려시대의 동서대비원(東西大港院)이 그 대표적인 기구로, 여기서는 불승들이 환자를 구휼하고 치료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는 환자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그를 돌보는 일을 매우 인도적이며 거룩한 행 위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는 상당 부분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적인 가르침에 기인한 것이다.
중세 이후 도시가 발달하고, 의사가 독립된 전문직으로 기능하게 되면서 기독교회는 의사의 행위를 윤리적 · 법적으로 제한하려 하였다. 예컨대 16세기의 교회법학자 마르땡 아스쿨피에따(Martin Asculpieta.1491-1586)의「편람」(Enchiridion)은 의사는 가난한 환자 등 무보수로 치료하여야 하며, 충분한 의료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약종상에게 부적당한 약물을 팔게 해서는 안 되며, 환자에게 독약을 주거나 낙태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들은 근세 이후 의사의 전문직으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지고, 국민국가의 발달에 따라 의료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