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7. 10:30ㆍ의료윤리
의료윤리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연역 주의(演繹主義) 모델과 귀납 주의(歸納主義) 모델 두 가지가 있다.
가. 연역 주의 모델
초장기 생명 의료 윤리학자들은 선행하는 그 무엇을 윤리 이론으로 보고 특정의 의료윤리 이론을 생명공학과 의학이 제기하는 도덕 문제에 적용해 그 답을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연역 주의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다음 논증을 살펴보자.
인간 존재를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르다.
안락사는 인간 존재를 죽이는 것이다.
따라서, 안락사는 도덕적으로 그르다.
이런 연역 주의적 모델은 논리학의 삼단논법과 유사하다. 즉, 하나의 도덕원리나 도덕 이론을 대전체로 받아들인 다음, 이를 우리가 처한 도덕 문제에 적용해 도덕적인 해결책을 추론해 낸다. 이러한 추론 방법은 인간의 실천적 행동과 연관된 삼단논법이라는 의미에서 실천적 삼단논법(practical syllogism)이라 한다. 그래서 공리주의 윤리설, 칸트주의 윤리설, 로스의 조건부 의무론 등을 구체적인 생명 의료 물음에 적용해 그 도덕적 해답을 얻고자 하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법은 생명 의료윤리 물음을 다루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좀 더 분석적으로 천착해 보면, 연역적인 방법을 도덕 이론의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안락사 논쟁의 참여자들은 어느 도덕 이론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다. 안락사 반대자들은 위의 경우처럼 칸트 적이 의무로는 채택하고자 하지만, 안락사 찬성자들은 공리주의 윤리설을 대전제로 채택할 것을 주장할 것이다. 합의가 쉽게 이루어진다면 생명 의료 윤리학자들은 단지 원리를 사례에 적용하는 도덕 판단의 중개인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반면에 도덕 이론에 대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전혀 구체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대전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왜냐하면, 생명 의료 윤리에서는 소전제가 하나의 도덕적 물음이다. 즉 대전제가 적용되자면 소전제에 해당하는 사실을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는데, 소전제 자체가 도덕적 물음이기 때문에, 대전제에 해당하는 도덕원리를 적응시키기 어렵다. 위의 예시에서, 뇌사상태의 인간을 안락사시킨다고 해보자. 그러면 뇌사상태의 인간도 생명권을 지닌, 다시 말해 대전제가 적용되는 살아있는 인간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는 곧 죽음의 기준에 관한 뇌사와 심폐사 논쟁을 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연역 주의 접근법은 이런 물음을 다룰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다고 하겠다.
나. 귀납 주의 모델
원리를 도덕문제에 적용하는 이러한 하향적 방법과는 달리, 의료종사자들은 도덕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귀납적으로 도덕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이 방법은 구체적인 도덕문제에서 일반적인 도덕원리로 나아가는 상향식 방법이다. 이는 생명 의료윤리학이 근본적으로 기존의 윤리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도덕문제를 낳기에, 구체적인 사례분석을 통해 사례 등을 유형화시켜 하나의 윤리적 입장을 얻어내고자 시도한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안락사 사례들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그로부터 안락사를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다음 그 각각에 대해 하나의 윤리적 입장을 얻고자 시도한다면, 이는 바로 귀납 주의적 접근방법이 되는 것이다.
귀납주의적 접근법의 대표가 바로 사례중심접근법 (easagastry)이다. 이 접근방법은 어떤 도덕문제를 줄 경우 그와 유사한 패러다임 사례를 토대로 하여 유비 추론을 이용해도 덕적 해결책을 찾는 방법을 말한다. 그래서 이 방법에 따르면, 먼저 주어진 사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요구된다. 그다음 그 사례와 가장 유사한 패러다임을 사례를 선별하여, 이와의 유비 추론을 통해 주어진 사례에 대한 도덕적 해결책을 모색하게 된다. 따라서 이 방법이 효율적으로 적용되자면,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이 전제되어야 한다.
① 주어진 사례를 정확하게 분석하여야 한다.
② 패러다임 사례들이 미리 확립되어야 한다.
③ 가장 적합한 패러다임 사례를 선별해야 한다.
이 방법은 도덕문제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맥락을 고려하기에, 현실적인 답을 줄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이 방법은 생명 의료윤리학자 개인의 판단에 상당히 의존하게 된다. 즉, 위에서 ① 과 ② 를 처리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사례중심접근법에서는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윤리학자 자신의 실천적 지혜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방법의 성패는 패러다임 사례의 존재해 달려 있는데, 현재 생명 의료윤리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하는 문제이다.
한 예로서, 안락사는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가의 물음과 같은 패러다임 사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 마련되어 있다면, 이를 근거로 주체적인 삶에서 제기되는 복잡한 상황의 안락사 물음을 유비 추론에 따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안락사 자체에 대한 도덕적 허용 가능성 물음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사례중심접근법은 적용되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해, 사례중심접근법은 개별사례를 다루는 방법이지, 패러다임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도덕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부적합하다고 하겠다. 더구나 생명 의료윤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생명권의 당사자가 누구인가 하는 도덕적 지위 물음과 같은 보편적인 물음을 이 방법은 다루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