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7. 10:21ㆍ의료윤리
1. 의료에서 의료윤리의 위치
일반적으로 의과대학생이나 의사들은, 의료에서 의료윤리는 특수한 경우나 몇몇 특수한 일과 관련한 의사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며, 보편적인 의사들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의료윤리는 모든 의사의 일상적인 의료행위에 깊이 관련되어 있고, 의료행위를 하는 한 의료윤리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월이 갈수록 의료윤리의 의료에 대한 영향은 점점 커가며 또한 그 중요성을 더해 간다.
우선 의료는 의료제도에 의하여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 나라의 의료제도를 형성하는 기본이념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나라의 의료제도가 결정되고 의료제도에 따라 의료행위의 양상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의료제도를 구축하는 기본이념은 윤리학의 기본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의료제도 형성의 기본이념은, 모든 국민에게 필요할 때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와 사회정의에 입각한 의료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기본이념에 따라 사회보험 형태의 건강보험제도, 의료전달체게, 진료비의 통제, 진료 거부 금지, 선택진료의 규제, 일정률의 일반병실 확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제도가 수립되었고 의료는 이에 따라 수많은 규제와 영향을 받고 있다.
의료인과 환자와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비판에 따라 과거의 가부장적인 관계에서 계약 관계 또는 봉사 관계로 변함에 따라 의사나 병원이 환자에게 대하는 태도, 사용하는 언어, 설명의 의무, 승낙의 의무, 사생활의 비밀 유지 등 진료 과정에서 의사가 전보다 다른 새로운 의무를 지게 되었고, 환자는 이것을 권리로 주장하고 있다. 병원들이 환자 중심 병원, 친절한 병원 운동을 하는 것도 의료계가 새롭게 지게 된 의무에 의한 것이다.
의사는 윤리적으로 가장 최신지식과 기술을 항상 습득하여 환자 진료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윤리적인 요구로 의사들은 보수교육을 받아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고, 의료사고가 났을 때 의사가 최신지식과 기술을 적용하여 환자를 진료하였는지, 또는 환자 진료를 위하여 온 힘을 기울였는지가 법적 판결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의사의 의료행위의 선택 자체에 의학지식과 기술보다는 윤리적인 판단이 더 중요하게 적용하는 때도 잦다. 인공임신 중절, 안락사, 인공호흡기의 제거, 기형 어린이에 대한 진료, 뇌사, 약의 선택, 진료 방법의 선택 등등에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에 의한 판단보다는 윤리적 판단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의학에서 발전시킨 새로운 획기적인 의학지식과 기술의 적용 여부에 윤리적인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효과적인 임신중절 약의 사용, 대리모, 유전자 재조합, 태아의 성감별, 생명복제 등등은 의학의 발전에 힘입은 획기적인 기술이지만, 이 기술을 실제로 사용하거나 적용할 것 인가의 결정 여부에는 윤리학적인 판단이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의학 또는 의학 연구 자체의 발전 방향 및 연구 방법의 선택에도 윤리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 생명복제 기술을 인간 생명의 복제를 위해서는 거의 모든 나라가 이를 윤리적인 이유로 연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에서 환자와 대조군의 선택, 연구 기간, 그리고 중간결과의 평가 등에 대해서도 윤리학적인 기준이 절대적으로 적용된다.
이처럼 의사의 진료에 의료윤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게 관련되어 있어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2. 진료 윤리 영역에 포함되는 주제들
의료윤리 영역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인간관계 윤리이고, 둘째는 생명과 관련된 윤리이고, 셋째는 의료 분배와 관련된 윤리이다.
가. 인간관계 윤리
인간관계 윤리에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 의사와 다른 의료진과의 관계, 의학자와 연구대상자와의 관계, 환자와 환자와의 관계, 그리고 환자와 그 가족과의 관계 등 여러 다양한 내용이 있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는 환자 권리장전으로 대변되는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윤리 문제에는 권위 의식과 특권의식이 있다. 이는 의사들이 남보다 교육을 많이 받았고 위업은 고귀한 직업이기 때문에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 의사는 환자보다 유리한 처지에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와 환자와의 사이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윤리 문제는 위의 두 가지 의식과 유리한 의사의 위치로 환자에게 부당한 영향을 끼칠 때 발생한다.
환자 권리장전에는 관심과 존중을 받을 권리, 인간으로서 존경과 대우를 받을 권리, 사생활과 육체적인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 설명을 듣고 승낙할 권리, 자기의 질병에 대한 진실을 설명 들을 권리, 그리고 진료비에 관해 설명을 들을 권리 등이 있다. 환자의 주장은 너무도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들이 그간 병·의원에서 의사를 통해 침해되고 유린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료인과 다른 의료 요원과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 문제는 의료인들이 유리한 입장에서 다른 의료 요원을 착취하거나 사사로운 요구를 하는 경우들이 제기되고 있다. 환자와 환자와의 관계와 환자와 환자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여러 가지 윤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전형적인 것으로는 대리모와 관련된 문제와 환자의 유산상속과 관련된 이해가 진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삶과 죽임과 관련된 윤리 문제
삶과 죽음과 관련된 윤리 문제의 대부분은, 과거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근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의 발전으로 의료에서 전보다 많은 능력을 갖추게 됨에 따라 발생하는 윤리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삶과 죽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윤리적인 과제들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①기형이 아주 심한 아이가 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②사고로 크게 다쳐 불구가 되었거나 회복할 수 없는 질환에 병에 걸린 젊은이가 삶을 포기하려고 할 때
③인공수정 된 난자는 필요 없을 때 그대로 버려도 무방한가?
④임신중절을 시행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정당한가?
⑤뇌사 환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뇌사의 의미는?
⑥환자가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주어야 하는가?
⑦회복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되는가?
다. 의료 분배와 관련된 의료윤리 문제
의료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사람이 필요할 때 질적으로 우수한 의료를 싸고 쉽게 받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의료자원은 불행하게도 항상 부족하다. 여기에서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부족한 의료자원이라고 하면, 예를 들어 의사, 간호사와 같은 의료인력의 부족, 병·의원, 장비, 기기, 병실, 약품, 이식할 장기 등의 부족을 말한다.
가장 이상적인 분배의 원칙은 아직 찾아내지 못하였다. 여기에는 네 가지 이론이 있다. 공리주의적인 이론, 자유 지상주의적 이론, 공동체 주의 이론, 그리고 평등주의 이론 등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이론은 사회정의로 표현되고 있다. 선택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주의는 자유시장 정의로도 표현하고 있다. 지난 시대에 이 두 가지 이념이 정치, 경제, 사회, 의료 모든 분야에서 충돌을 빚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의 이념보다는 두 이념을 보완하는 중용에서 이상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