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7. 11:04ㆍ의료윤리
1. 근대 의료윤리학의 탄생과 의료윤리강령의 제정
근대적인 의료윤리학은 1772년 존 그레고리(John Gregory, 1725 ~ 1773)의「 의사의 자질과 의무에 대한 강의」(Lectures on the Duties and Qualificaations of a Physician)의 출간과 더불어 정식화되었다. 종래의 의료윤리가 종교적인 가르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면 이 '근대적 정신'의 의료윤리는 흄, 아담 스미스와 같은 영국의 계몽주의 사상, 존 로크의 경험주의, 그리고 벤담과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영향을 반은 세속적인 것이었다. 그는 도덕적 감성의 개념으로 의료윤리를 설명하였으며 의사들의 바람직한 자질로 '인간미, 인내, 주의력, 분별력, 비밀보장, '명예심' 등을 들었고, 무엇보다 환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강조하였다. 이후 영국의 토마스 퍼시발(Thotnas Percival, 1740 ~ 1804)은 의사의 윤리강령(code)을 제안하였고(1792) 1803 년에는「의학윤리」(Medicul Ethics)를 출간하였다. 퍼시발의 강령은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여러 가지 윤리강령을 종합하고, 법적이고 종교적인 성찰을 덧붙인 절충주의적 성격을 피고 있었으며 의사란 환자의 복지를 돋보는 일종의 ' 공공의 봉사자'이기 때문에 특권과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의 이론은 곧 널리 보급되었으며 그 영향은 1808년 미국의 보스턴의사회에서 윤리강령을 제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1847년에는 새로 창립된 미국의사협회(AMA)가 퍼시발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의사윤리강령을 제정 · 선포하였다.
18 세기 ~ 19세기 전반의 이러한 의료윤리에 관한 관심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기인한다.
첫째, 의사의 전문직화가 가속화되면서 다른 의학분파들과 대비되는 정통적인 의사(orthodox physician)의 모습을 내세울 필요성이 생겨났다. 두 번째로, 프랑스혁명과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권, 박애, 평등과 같은 가치들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적인 권리로서 주장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로, 유효한 의학체계와 건강권에 대한 공공의 요구가 증가하여 이를 위해 의사의 교육 수준과 자질을 통제할 필요가 생겨났다.
이런 의료윤리강령은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미국은 환자 의사 관계의 계약적 성격을 중시하는 모습을 띠게 되었고, 이는 20세기의 의료윤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의료윤리 역시 의사의 도덕적 자질 (moral virtue)을 강조하는 선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환자에 대한 바람직한 에티켓과 전문직으로서의 의무감을 주장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2. 20세기 의학기술 발전과 의료윤리의 변화
생리학, 병리학, 미생물학 등 엄밀한 생명과학에 기반을 둔 소위 생의학(biomedicine)이 20세기 의학의 주류로 자리를 잡으면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윤리적인 문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물실험을 통해 과학적 생리학의 기초를 닦은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 ~ 1878)는 인체실험의 유용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과학의 발전이나 타인의 복지에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면 그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 1896)의 공수병 예방백신 접종 실험과 같이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는 무모한 실험 또한 초기에는 많이 행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통하여 이러한 연구의 위험성이 알려지고 이를 통제하는 윤리적인 기준들이 마련되었는데 그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나치 및 일본 제국주의 정권에 의한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인체실험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에 협력하여 이런 연구를 한 의사와 과학자들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뉘른베르크 강령>으로 알려진 원칙이 정식화되었다. 그 가장 중요한 핵심은 베르나르의 원칙과 같이 어떠한 연구도 대상 인간의 건강에 위해를 주면서까지 수행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인간 대상연구에는 해당 피검자의 사전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1964년 세계의 사회 <헬싱키 선언>으로 이어져 현대 의료연구윤리의 초석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였고, 이는 의사가 환자의 죽음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70년대 이후로 가족이 식물인간으로부터 인공호흡기 제거를 법원에 요청한 "카렌 권한 사건" (1973)이나 환자 본인이 영양공급 중지를 요청한 엘리자베스 부비아 사건 (1983)과 같은 사례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69년 심장이식이 성공하면서부터는 뇌사환자의 장기이식과 뇌사의 죽음인정 여부라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1978년에는 영국의 무어스 브라운이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남으로써 인간의 생식행위에 의학이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 20세기 중반 이후 여성 및 소수자의 인권의식이 고양되면서 낙태와 같은 전통적인 의료윤리부문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났으며 이는 아직도 치열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의료로부터 소외되었던 환자의 권리를 되찾자는 움직임 또한 일어났고, 의사들은 선의의 지도자, 혹은 관리자라는 종래의 모습으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제시하고 환자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어야 하는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1996년 복제 양 돌리의 탄생, 2000년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완성과 이를 통한 인간에 대한 유전적 조작과 인간복제의 가능성 등은 생명 의료윤리에 전혀 새로운 차원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주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생명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뒤흔드는 것으로서 기존의 윤리관과 가치체계를 전복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의료윤리는 의료의 영역으로부터 생명관과 가치의 연구를 포함한 생명 의료윤리로 확장되었고, 의사뿐 아니라 생명과학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 심지어 사회 전체가 관심을 둬야 하는 고민거리로 떠오르게 되었다.